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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여행/부다페스트 한달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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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느끼는 '이미 가진 것들'의 소중함

[ H ] 2017. 9. 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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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운치있는 부다페스트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요즘, 오히려 생각이 많다.
늘 여행을 좋아하고 밖으로 나돌기를 좋아했던 나. 22살에 캐나다 연수를 시작으로 25살에 유럽을 2번 다녀오면서 프랑스,스위스,독일,오스트리아,스페인,이탈리아,체코 등을 여행했다. 29살에 미국을 한 달씩 2번 방문하면서 주요도시를 거의 가보았고 같은 해에 방콕을 여행하며 처음으로 동남아를 가보았다. 30살에 괌, 32살에 홍콩과 치앙마이, 33살에 방콕에서 한달살기를 했다. 그리고 지금 34살, '부다페스트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다. 



여행뿐 만 아니라 회사도 많이 옮겼다. 벌써 8년 째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다닌 회사만 7개다. 월급이 밀리거나 회사 사정으로 그만 둔 적이 2번이고 그 외에는 그저 마음이 떠서 그만둔 것이었다. 참 얄궂게도 회사를 옮기고 나면 청개구리처럼 이전 회사의 좋은 점들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참으로 얄팍한 마음으로 그래도 잘 살아왔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 댓가로 늘 마음의 안정이 없이 긴장과 불안과 동시에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상태로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새로운 기회가 주는 설레임을 쫒아가는 쪽이었다.
이러한 특징도 습관인 것 같다. 습관이 모여서 성격을 만드는 것이니 한 두번 그런 선택을 하기 시작하면서 계속 그렇게 흘러온 듯하다. 젊을 때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고 하고 싶은 것들은 다 해보겠다고, 가고 싶은 곳은 다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회와 일에 대한 설레임으로 망설임없이 화끈하게 회사를 그만두곤 했다. 이럴 때는 참 과감하다고 스스로 약간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다. 그러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친구들을 답답하다고 생각하고 멀리하려고도 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호기롭게 그만둔 후 딱 11개월이 지났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생활이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기 있으면 저쪽이 좋아보이고 저기로 가면 이 쪽이 좋아보이는 것은 어느 순간 딱 끊어버리지 않으면 삶이 계속 고달파진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자유를 원한다면 그만큼의 보이지 않는 불안함을 감당하고 끊임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안정된 소속을 원한다면 자유의 일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혼자 일하는 무료함과 늘 작업만 하는 일상에서 또 벗어나고 싶어 부다페스트에 가겠다고 결정을 한 그 순간 설레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설레임 중독인가?' 라는 생각이다. 마치 마약처럼,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그 순간 마치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다시 익숙해지고 나면 또 새로운 자극을 바라게 되는 끝없는 루프. 



이 번 부다페스트 여행 직전 엄마를 오랜만에 만났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자주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여행을 앞두고 만나야 할 것 같아 집으로 갔다. 그리고 서울을 벗어난 한적한 그 집에서 아주 오랜만에 숨통이 트이는 편안함을 느꼈고 오랜만에 만나니 더 기억력이 감퇴한 엄마를 보고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연세가 지긋하신데도 여전히 적은 돈으로 아끼면서 사시는데 외국에서 한 달을 지내겠다고 가는 내 모습이 한 편으로 허황되게 느껴졌다. 허황됨, 먼 곳에 있는 무언가를 찾아 가까이 있는 소중한 것들을 두고 가는 누군가의 모습. 그게 바로 내 모습같았다. 


문득 어릴 때 보았던 '파랑새'라는 동화가 떠올랐다.
또 예전에 재밌게 보았던 '연금술사'라는 책도 비슷한 주제의 책이었다. 소중한 것이 옆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책과 노랫말들이 꽤 많은데도 나는 지금껏 100%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데도 가지 않고 아무것도 시도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는 건가?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 하지만 이런 저런 경험과 시도들이 쌓인 지금, 늘 남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에만 눈을 돌렸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온 능력들과 오래된 관계들, 그렇게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들의 가치는 새로운 것이 간단히 따라잡을 수 없다. 처음에 반짝 좋아보이고 나와 더 잘 맞는 것 같아도 정말로 내 것이 되기까지는 역시나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명 무언가 좋은 것을 얻고자 나는 부다페스트에 왔다. 
새로운 영감을 얻고 리프레시를 하고 돌아가서 또 하루 하루를 채워나가기 위해서. 이번에는 지금과 달리 내가 기존에 가진 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늘 외국 음식만 못하다고 생각한 한국 음식, 한국에서 지내온 시간들, 내가 오랫동안 해온 내 일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그 가치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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