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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 H ] 2018. 3. 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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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부지런히 살고 있는가??

부지런해야 한다는 믿음은 그 부지런을 이용하여 게으르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생각인지도 모른다. 일을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게으르고 여유를 부리는 일이 가장 걱정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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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란 개념은 역사적으로 볼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해 살도록 유도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져 왔다. 

만일 사회를 현명하게 조직해서 아주 적정한 양만 생산하고 보통 근로자가 하루 4시간씩만 일한다면 모두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고 실업이란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부자들에겐 충격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여가가 주어지면 어떻게 사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부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정직한 노동’을 칭찬하는 글을 써왔다. 소박한 생활을 예찬했고, 부자들보다 가난한 자들이 천국에 갈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가르치는 종교를 공언해 왔으며, 물질의 공간적 위치를 변화시키는 일에는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육체 노동자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고 애써왔다. 

이것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성적 노예 상태에 놓아 두면서 거기에는 뭔가 특별한 고귀함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애써온 것과 똑같다. 과거에는 속편하게 노는 것에 대한 수용력이 있었다. 그러나 능률 숭배로 인해 그러한 부분은 사라져 버렸다. 현대의 인간은 모든 일이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법이 없다. 

도시 사람들의 즐거움을 대체로 수동적인 것으로 되어 버렸다. 영화를 보고, 축구를 관전하고, 라디오를 듣고 하는식이다. 이렇게 된 것은 그들의 적극적인 에너지들이 모조리 일에 흡수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여가가 더 있다면 그들은 과거 적극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맛보았던 즐거움을 다시 누리게 될 것이다.





부지런함이라는 것이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면? 신선한 접근을 볼 수 있는 책. 어떤 목적없이 그 활동 자체가 즐거워서 했던 것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고 춤을 추고 여행을 다니고 노래를 부르는 일들은 인생에 큰 활력을 주며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해서 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기에 퇴근 후 지친몸으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대개 TV나 인터넷을 보는 것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 시간, 에너지, 재능이 소진되고 고갈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최근에는 그나마 딱 8시간만 근무를 하는데도 그런데, 일시작하고 2,3년 동안은 12~15시간씩 일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분명 초기에는 감각이 살아있었는데 어느 순간 무뎌지고 일을 위해서가 아니면 좋아했던 그림도, 디자인 작업도 하지 않게 된 비극. 내가 인생의 상당시간을 자발적 노예로 살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사실 어떤 일이든 하면 할수록 재미가 붙기도 한다. 지치고 고갈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적당히 쉬지 못하고 오버워킹했다는 신호를 우리 몸이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 '억지로' 하는 시간이 많았다는 증거다. 정신과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면 어느 순간 무기력과 내적 자원 고갈을 경험하게 된다. 남을 위해 혹사당하는 것을 반드시 피해야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남는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한 취미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게으름이 아니다. 적극적인 자기 충전이다. 작가가 말하는 것도 자발적 노예로 살다가 겪게되는 무기력이 아닌 적극적인 게으름을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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