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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안할까 (feat.알랭 드 보통 - 불안)

[ H ] 2019. 1. 13.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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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불안할까 (feat.알랭 드 보통 - 불안)


성공 부추기는 사회에서 살기

고백하건데,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도 잘했고 미술도 잘했고 사고치는 일 없는 모범생이었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때만 해도 앞으로 내 인생 탄탄대로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못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남의 불행위에 쌓는 행복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은근히 우월감을 느끼며 살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인간들만 모아놓은 대학교에서는 또 다른 경쟁의 연속이었고 그 안에서 또 남들보다 잘하기 위해 우월하기 위해 성적, 과제, 외모 관리까지 힘쓰며 늘 쫒기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책을 많이 보며 세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는 삶을 꿈꾸었지만 회사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시 세속의 가치관에 물들고 더 욕심이 많아지기도 했다.



뭐 부추기는 인간들 조심


꿈을 쫒으라거나 성공을 부추기는 류의 자기계발서가 넘쳐난다. '원하는 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종류의 책들과 유투브 영상들은 여전히 매혹적이어서 그 말만 들으면, 그대로만 하면 나도 성공할 수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책으로 돈을 버는 건 결국 그 작가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다.

물론 인생이 자기가 생각한 방향으로 펼쳐지기 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가진 재능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르다. 이런 류의 컨텐츠의 문제점은 열심히 의욕을 부추기기만 하고 정작 구체적인 지침들은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건 각자 하기 나름이라 결국 못 이루면 그 사람탓으로 넘길 수 있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둔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했더니 이만큼 돈을 벌게 됐다, 여러분도 생각을 이렇게 바꾸고 도전한다면 할 수 있다' 디테일만 조금씩 다르지 다 이런 내용들. 그런데 사람마다 성공에 대한 정의도 다르고 만족하는 포인트도 다른데 돈과 성취에 국한된 일률적인 성공매뉴얼을 따른다고 우리의 삶이 더 나아질까?




알랭 드 보통 - 불안

최근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고 이런 세상에서 살면 왜 불안해지는지 그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신분이 정해져 있던 과거와 달리 모든 기회와 가능성이 열려있는 현대사회는 가난과 무능함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돌려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노력해봐야 부자가 될 수 없다면 이에 대한 수치심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런데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와 가능성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개인의 무능함이 부각되고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따라오게 된다.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야말로 불안의 원천이다. 


너무 공감되는 말. 이 문장에 이 책의 중요한 포인트가 들어있다.

나와 멀게 느껴지는 누군가가 아닌, 가까운 사람의 성공이 얼마나 속쓰린지는 누구나 아는 감정이 아닌가? 참 묘하다. 사실 그 상대가 잘되서 싫은 것 보다, 그걸 통해서 상대적으로 내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그 감정이 싫은거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듣기 좋은 말이 불안을 낳는다는 통찰도 신선하다. 무한이라는 말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끊임없이 더 나은 무언가가 되어야한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이것이 보통이 생각하는 불안의 근원이다. 


애덤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힘들게 부산을 떨고 노력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생활필수품? 그것이라면 노동자의 최저 임금으로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 삶의 위대한 목적이라고 하는 이른바 삶의 조건의 개선에서 얻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자가 자신의 부를 즐거워하는 것은 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세상의 관심을 끌어모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속시원한 부분. 그렇게 우리가 애를 써가며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돈을 벌고 배우고 욕심을 부리는 이유가 결.국.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 나를 조금 더 좋게 대해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며 야망을 불태우며 스트레스속에서 사는 것인가?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다들 야만인과 근대의 노동자가운데 노동자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과연 정말일까' 하고 물었다.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 근대 사회는 첫번째 방법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 욕망에 줄기차게 부채질을 하여 자신의 가장 뛰어난 성취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요즘 나의 고민에 답을 내려주는 듯한 문장을 발견해서 색깔 표시 땅땅! 나와 같다고 여겼으나 너무 앞서가게 된 지인을 보며 나도 빨리 가야한다는 조바심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하지만 장 자크 루소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속도와 방향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두는 것이 먼저임을 깨달았다. 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잊게 되는 부분이다.

잊게 되는 이유는 경쟁심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보고 나서 결국 '사랑', 상대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도 한 몫 했다는 걸 알았다. 그 친구와 멀어질까봐 억지로 보조를 맞추려고 했다는 것도. 하지만 내 인생은 누구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니 설령 사람들과 멀어진다 해도 나는 내 길을 내 속도로 찾아가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가기

이 '불안'을 읽으면서 또 한 번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노력보다는 자연스러운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성공한 방식대로 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결국 '세상과의 소통, 그리고 타인의 인정과 관심'일 것이다. 그들의 말을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괜히 허상만 키우고 실제로는 되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자책하게 되는 경우도 많거니와 실행하지 않는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게 되기도 하니까.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 

당장 건강한 몸, 몸을 뉘일 집이 있고 밥을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이미 감사한 일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훨씬 좋은 것 같다. 저 먼 곳에 있는 목표가 아니라. 요즘 우울과 불안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안분지족하는 삶의 태도가 신경안정제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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