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는 아니지만 에니어그램 카페에서 많은 내용을 보고 영어로까지 인터넷 서핑을 하며 에니어그램을 공부했었다. 그랬던 이유 중 하나는 내 유형이 너무 헷갈렸기 때문이고 주변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를 알아내고 싶은 욕구에서였다. 그런데 에니어그램이 워낙 복잡하고 날개와 통합/비통합까지 있어서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나 자신에 대해 내면의 동기까지 알아야 하기에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자기 유형번호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감이 좋은 사람이나 객관적인 타인이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국 에니어그램 번호라는 것은 내 환경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습관이고 곧 집착적인 행동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성격대로 장점을 살려서 사는 것도 좋지만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을 묶고 있는 그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얽매임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통합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 한가지 번호의 얽매임으로 벗어난 자유의 상태, 아무 유형도 아니기도 하고 모든 유형이기도 한 그런 상태말이다. 이런 사람은 물론 드물겠지. 그리고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 해탈과도 통하는 개념인 것 같다.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더 큰 존재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에니어그램이 다른 성격검사와 다른 것은 성격을 틀에 가두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이 '통합'이라는 개념을 통해 영적인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통합, 비통합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비통합, 본인이 편안할 때 통합번호의 특성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애초에 어떤 결핍에서 하나의 집착이 생겼고, 이 집착으로도 문제의 해결이 안되면 좌절해서 비통합의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감에서 느껴지는 것 처럼 통합은 좋고 비통합은 나쁘다라는 것은 아니다. 비통합의 과정 또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지금 비통합 상태니까 나 상태안좋네?라고 좌절할 필요도, 통합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단순히 좋아할 것도 아니다.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면 통합의 모습과 함께 비통합의 긍정적인 면도 드러나며 나아가 모든 유형의 장점을 갖게 될테니.
통합으로 가려면 그 어떤 노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다. 결핍을 채우려고 만들어진 그 모든 습관과 욕심,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곧 통합방향의 긍정적인 면인 것이다. 통합 방향의 번호란 사실 자아가 어린 시절 원했지만 억눌려진 그 무엇을 담고 있기에 숨겨진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이를 '소울 차일드'라고도 하는데 곧 통합 방향의 모습을 한 아이가 내면 깊숙히 숨겨져 있다는 것.
원리, 원칙을 따르는 것에 집착하는 1유형은 얼핏 꽉 막힌 느낌을 주기 쉬우며 스스로를 억제하며 살기 쉽다. 이 세상에는 원래 그래야하는 정답이 없고 윤리 도덕같은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룰일 뿐임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풀어줄 때 7유형으로의 통합이 일어난다. 사실 자유롭게 살며 즐기는 유쾌한 면이 어린 시절 억눌렸고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는 경험으로 기준을 지키는 착한 아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사실은 그 모든 기준을 어기고 자유로워지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받아들인다면 스스로에게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더 관대해지는 모습을 보일 것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준 같은 것은 원래 없고 그저 즐겁게 삶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달을 때 1유형의 집착에서 풀려날 수 있다.
남들을 돕고 친절한 2유형은 사실 사랑받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타적인 2유형의 내면에는 사실 자기중심적이고 질투가 많으며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다. 있는 그대로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던 2유형은 남을 돕고 친절하게 행동할 때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2유형은 관심을 받기 위해 남을 돕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한 편으로 타인 의존적인 삶을 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필요치 않은 사람을 도우며 애정을 갈구하는 자신의 집착을 깨달을 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4유형으로 통합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갖고 타인에 대한 집착을 놓을 때 나도 남도 행복한 공존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사랑은 이미 내 안에 존재함을 느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는 3유형의 내면에는 부끄러움을 타고 불안해하는 어린 아이가 있다. 하지만 이런 여리고 의존적인 면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무언가를 잘할 때만 칭찬과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3유형은 무언가를 잘하고 유능하며 주목받을 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며 그러지 못할까봐 두려움을 느낀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해도 내심 자신을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하는 약한 존재로 느끼고 있다. 이런 내면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며 성취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도 안전함을 깨닫는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 자신으로서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도 사랑받는 존재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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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는 5유형은 내면에 충만한 활력과 격렬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어린 시절 이러한 면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충만한 호기심을 책과 지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5유형은 고립되고 물러나 있으려는 집착을 버리고 현실에 뛰어들어 생생한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머리로 아는 것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앎과 깨달음이 그들에게 일어나며 삶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5유형의 모습에서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8번의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
늘 불안해하는 6유형은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불안하지 않으며 걱정하지 않아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며 대부분의 경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과 최악의 상황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망상임을 깨닫고 내려놓는 순간 진정한 안정은 내 안에 이미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 미리 예측하고 혼나지 않기 위해 대비해야 했을 수도 있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내 내면의 목소리임을 알고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놓아버리면 평화가 이미 내면에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늘 즐거운 것, 쾌락을 찾는 7유형의 내면에는 슬픔과 우울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행복과 즐거움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린다면 오히려 내면의 충만한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고 밖에서 많은 것을 찾아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도 슬픔도 모두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면 조용한 사색의 시간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5유형으로의 통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홀로 있음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훨씬 풍요로운 행복이 내 안에 이미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늘 강해지려는 8유형의 노력은 강해지지 않으면 겪게 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더이상 강해지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내려놓으면 2유형과 같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저 사랑받는 것으로도 충분한 어린 시절 마음껏 어리광부리는 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강해지고 독립적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들이 주어졌을 것이다. 8유형은 내면의 약한 아이를 받아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내면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자연스러운 통합이 일어날 것이다. 부드러움이 곧 강함이고 강해지려는 집착을 내려놓아도 큰 일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9유형은 스스로를 억제하는 그 힘을 놓아줄 때 내면의 자연스러운 열정과 의지가 올라올 것이다. 주목과 관심을 받고 자신의 의지를 따르려는 본연의 욕구가 억눌렸던 어린 시절을 이해하고 그런 자신을 받아들일 때 3유형의 발전적인 모습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과 주변의 평화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나와 내 주변이 조화를 이루는 방법임을 이해하고 안정과 평화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살아있음을 더욱 느끼게 될 것이다.
통합은 곧 나라고 믿었던 그 유형의 행동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곧 내가 나라고 믿었던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기에 처음엔 저항이 심하다.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내 존재가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은 실체가 없는 두려움이다. 아기새가 절벽에서 떨어지면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하지만 뛰어내리는 순간 날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것이 자유자재로 된다면 그는 더이상 이 세상에 걸릴 것이 없고 에고의 틀에 묶이지도 않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어느 유형도 아니고 모든 유형이기도 한 그런 사람, 더이상 에니어 유형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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