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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회피 성향의 나란 사람

[ H ] 2019. 7. 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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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을 공부한 형부덕에 최근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다.

큰 돈 내고 상담 받아야 할 것을 우리집에 대해 잘 아는 가까운 사람덕분에 쉽게 알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늘 마음 한 켠이 불안하고 무엇을 성취하거나 경험해도 공허한 마음의 정체가 뭔지 찾기 위해

불교, 명상, 동양철학, 심리상담 등 각종 방법들을 활용했지만 완전한 해결은 아니었다.

일반론적인 깨달음이나 철학적인 이야기가 인생에 큰 도움은 되지만

딱 '나'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긴 대화를 통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릴 적, 엄마로부터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반응은 부정이었다. 

"엄마는 전업주부였고 오히려 집착으로 느껴질 정도로 우릴 챙겼다"

라고 믿고 있었기에. 

하지만 늘 들어왔던 "ㅇㅇ이는 울지도 않아서 키우기 편했어" "ㅇㅇ이는 혼자 알아서 잘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게 좋은 게 아니라 울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양육자에 대해 마음을 접고 혼자 적응해버린 것.

커가면서도 나는 늘 시크했고 가족들과 거리를 두었고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공부, 성취에 매달렸다. 

나는 그게 좋은 것인 줄 알았고 한편으로는 자부심으로 느끼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건 회피애착을 지닌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얼핏 독립적이고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쿨한 모습들말이다.

 

내가 방치되고 제대로된 감정돌봄, 관심을 받지 못해서 이런 성향이 되었음을 처음으로 직면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평화롭지 못했던 가정환경(억압적인 아빠, 부모의 싸움, 고부갈등, 분열된 가족)의 문제들을

나름 잘 극복하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감정 기능을 꺼둔 채 성취에만 매달리며

문제를 회피해왔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나는 왜 혼자가 좋을까'라는 책을 보고 애착 성향 테스트를 했을 때 회피-불안이 모두 높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는 내 성향을 받아들이고 살아왔다.

그리고 사교적인 사람들과는 성향이 다를 뿐, 난 사람이 없어도 잘 지낸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외로움에 허덕이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으며

누군가 나를 지지해주면 갑자기 마음을 열고 걷잡을 수 없이 그 사람에 매달리는 면이 있었다. 

사실 혼자 있는 것은 그냥 익숙해서였고 늘 마음으로는 애정을 갈구해온 것이다. 

그런 나를 알고 나니 한편으로는 참 불쌍하고 슬펐다. 

제대로 된 애착이 형성이 되지 않아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이유없는 공허함에 평생 시달려왔으니.

 

그동안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연애대상과 나를 지지해주는 친구들도 만났었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만 멀어지거나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버려지는 두려움에 불안에 떨었다.

부모한테 경험하지 못한 사랑과 지지를 해주는 타인을 순간적으로 엄마로 인식했던 것 같다. 

 

지금껏 나의 모습들

1. 자기 포장이 심했다. 

   - 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문제를 보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였나보다.

2.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 엄마아빠와 감정적 거리가 있어서 요구하거나 힘듦을 토로하지 못했고 스스로 모든 걸 하는 습관이 들었다.

3. 공감능력이 없다.

   - 엠비티아이상 ISTP에 가까운 성격인데 타인의 감정 토로와 하소연을 힘들어한다. 그런 것을 내가 받아본 적이 없어서였다.

4. 여행 중독 

   - 왠지 모르게 여행을 좋아했다. 설레고 들뜨는 기분에 몸을 맡기면 불안과 공허가 일순간 잊혀지기 때문일까.

5. 연애보다는 능력개발에 집중했다.

   - 연애를 하면서 발생하는 감정표현과 트러블을 해결하는 과정들이 힘겨워서 차라리 자기개발하는 게 좋았다.

 

여러 블로그를 돌아보니 이 애착문제도 성인이 되어 해결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3살때까지 형성된 심리와 정서가 평생간다는 말을 들었기에 절망적일수도 있었지만

문제있는 부모가 더 많기에 애착문제는 몇몇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서 일단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연인이나 배우자 혹은 다른 안전기지의 역할을 하는 매개를 통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반가운 내용.

내가 그림을 그린 것도 그것이 나를 표현하고 나에게 안정을 주는 안전기지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거나 불행한 유년기를 가진 사람들이 놀랄만한 업적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에서 명상도 하고 약물 복용도 하고 방황했지만

엄청나게 일에 몰입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근원에는 애착의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다.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내면의 공허때문에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해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국 스티브잡스는 췌장암으로 투병을 하고 사망했다.

최근 황제내경을 알게 되어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배웠기에 그 췌장암도 마음의 불안과 상처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것 저것 도전하고 성취하고 많은 곳을 여행한 것,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재능이 많았던 것도

결국 이 내면의 불안정과 공허때문이었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실마리를 얻은 느낌이다. 

아직 부모 형제가 살아있어 그 관계를 회복하고 좋은 연결감을 갖게 되면 상당부분 안정감을 얻게 될 것 같다.

부모에 대한 미움을 덜어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해낸다면 인간적으로 한단계 성숙해질 것이다.

배우자나 연인이 있다면 자신의 문제를 털어놓고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며 서로의 안전기지가 될 수도 있다. 

마음을 터놓는 소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종교단체가 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글쓰기와 같은 특정 재능을 세상과 공유함으로써 연결감을 가질 수도 있다. 

혹은 반려동물을 키우며 건강한 애착을 만들수도 있고 텃밭을 가꾸고 야채를 기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텃밭을 가꿀 때 심적으로 안정되보인다. 

 

결국 마음 둘 곳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지.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이 첫걸임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이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내 마음도 속여가며 자신을 좋게만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애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실패라는 것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지 알아내고

병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니 있는 그대로 자신을 보고 직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문제가 없다는 생각은 '나는 문제가 있어서는 안돼'라며 또 하나의 압박을 스스로에 주입하는 것이니까.

우리 대부분 양육자의 엄격함을 주입받아서 자신의 잘못된 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며 스스로를 더 힘들게 만든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자. 

 

누가 날 알아주기 전에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내가 내편이 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유도 모른채 평생을 공허감에 시달리는 굴레를 끊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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